포장이사를 믿지 못해 하나하나 정성들여 박스에 담을 때만 해도 '행여나 함부로 던지거나 해서 뭐라도 깨지거나 망가지면 어쩌나...'라고 생각했었다. 막상 본격적으로 포장이사가 시작되자 '그래,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지.'라고 다시 깨달았다. 벌써 세 번째 포장이사이지만 아직 적응이 안 된다.
'소유'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본다. 왜 나는 (또는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소유, 또는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까.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물질적 소유가 반드시 인간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다 읽지도 못할 책을 마구 사들이기도 하고, 언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식재료가 냉동실 제일 깊은 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식재료는 버려야 하니 아깝지만 책은 언제든 읽으면 되지 않냐고? 책의 주제가 시대 변화에 민감하다면 결국 버려지는 책이 될 수도 있다. 사서 한 번도 매지 않은 가방, 사서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아직 포장지도 뜯지 않은 각종 생활용품들... 지금이야 무쓸모한 구매였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지만, 왜 살 때는 그 생각을 못한 걸까?
물질적 소유가 주는 obsession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을 이번에도 어김없이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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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쓰지 못할 것이 예상되는 물건이라도 1+1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걸음이 멈춘다. 왜? 아까워서? 무엇이 아까운가? 지갑 속 돈이 아까운 거라면 왜 반값 할인 중인 휴지 100개를 사진 않을까? 지갑 속 돈과 정비례하지 않는 가치가 있음을 우리 모두는 잘 안다.
그럼 다시 질문. 다 쓰지 못할 물건이라면 1+1 이벤트 중이라도 지갑을 꺼낼 필요가 없지 않을까? 쓰지 못하는 만큼 가치가 떨어지는 물건일테니 말이다. (이웃과 나눠쓰는 거라면 예외)
할인 중인 물건을 사지 못할때 우린 무엇을 불안해 하는가? 적은 돈으로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 못하는 것이 불안한 걸까?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더 많은 소유가 우릴 행복하게 하는가? 오히려 반대는 아닐까? 한번 내 것이 된 물건은 거기서 끝인가? 버려짐에 대한 불안, 도난에 대한 불안 등은 어떠한가? 소유가 그런 불안감을 낳는다면, 그래도 그 물건이 내가 낸 돈만큼의 가치를 갖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시 소유가 자존감을 높여주는가? 그럼 이렇게 묻고 싶다. 적은 소유가 자존감을 낮추는지, 아니면 본인 스스로 그렇게 만드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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