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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돌이다

진로 고민

  오랜만에 글을 싼다.


  지난 3월, 반 강제로 인사이동을 당한 후 "내 인생에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으르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성격이기에, 3년 동안 내 위치에서 안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수동적 인간의 최후란 항상 이렇다. 연구자의 길을 진정 원했다면 조금이라도 칼을 갈아놓았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연구자로서 들고 있는 무기는... 글쎄, 무조차 썰 수 없는 단도 정도면 적당한 표현일까 싶다. 어쨌든 그렇게라도 충격을 받았으니, 어떻게든 지랄반응을 해야 살아있는 인간이라 할 수 있겠지. 당장 시작한 일은 '나'를 찾는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환경에 익숙해지면 생각이 좁아진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라는 자문은 하지 않고, 그냥 하다보니 계속 하게 되기 십상이다. 나 또한 그러했다. 수학, 과학이 좋아서 - 또는 국어나 미술은 잘 하지 못해도 혼나지 않는다는 말에 솔깃하여 - 과학고를 갔고, 이 공부를 더 할 수 있다기에 별 고민 없이 카이스트를 갔다. "난 돈보다는 공부야!"라는 생각에 대학원을 갔고, 박사과정을 밟았다. 내 인생의 큰 고난 중 하나였던 대학원 시절도 어찌어찌 지나가고,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곳(회사 산하 연구소)에 취직을 했다. 아마 그곳이 당장 팔려야 하는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 그래서 항상 시간에 쫓겨야 하는 곳이었다면 입사를 망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의 사람들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곳의 분위기도 지금까지 내가 겪어왔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또 그렇게, 별 고민 없이, 새로운 곳으로 옮겨갔다. (원래 있던 곳이 워낙 단점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것도 이직의 이유 중 하나이긴 했다. 그곳에 가게 된 것도 수동적 인간형의 결정체였음은 안 비밀.)


  그러다보니 나이 서른을 넘겼고, 이젠 경제적, 정신적으로 안정된 상태의 나를 만들어야 할 나이가 됐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번도 "내가 지금 이 테크트리를 타는게 맞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분명히 몇번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심각하게, 밑바닥에 깔려있는 나의 자아에게, 선입견과 고정관념과 자기최면을 깔끔히 배제한 채 내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 진로 고민을 해본 적이 없는 거다. 까놓고 말해, 그냥 생각 없이 살아온 거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때 가장 즐거운지, 그걸 몰랐다. 역시 수동적 인간의 최후란 항상 이렇다니까. (참고: 윤태호 인터뷰 1편, 2편)


  그러다 갑자기 인사이동을 당했고, 정녕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곳에 와버렸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바다 한 가운데 표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튼튼할 줄만 알았던 유리 바닥에 갑자기 금이 가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안정된 상태의 나를 만든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큰일났다!"


  30대 중반에 진로를 고민한다는게, 그것도 밑바닥부터 고민한다는게 참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할 것 같았다. 이렇게 계속 끌려다닐 것 같았다. 곡예를 하듯 쌓아올린 상자들은 바닥이 흔들리면 언젠가는 무너지기 마련이니까.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내내 숨기고 싶었던, "무언가 내 인생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라는 사실을 까놓고 대면하기로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떤 나쁜 선택을 하였기에 이 꼬라지가 되었는지를 되짚어보기로 했다. (이런걸 high risk-high return이라고 하지.)


  그리하여 시작한 '나를 찾기'의 첫번째 스텝은, 모든 전제조건을 배제한 상태에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와 문구들을 열거하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것], [잘하고 싶은 것], [싫어하는 것]으로 칸을 나누고 생각나는 대로 써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좋아하는 것

잘하고 싶은 것

싫어하는 것

 matlab coding

 labview coding

 UI 설계

 수학, 과학, 물리

 가르치는 것

 개념적 이해

 희소성

 논문 읽기, 공부

 알고리즘

 아이디어

 simulation

 정리, 단순화, 모듈화

 C++ coding

 python coding

 논문 쓰기

 영어

 강XX 전문처럼 되기

 기획

 로비, 돈 따오기

 말로 설득하기

 실적 스트레스

 정치, 조직관리

 뻔뻔해지기

 단순노동

 머리 안쓰고 몸만 힘든 일

 사람 대하는 일

 리더로서의 역할

 행정 업무, 사무적인 일

 동기 부여 안되는 일


라는 표가 나왔다. 보통 이쯤 되면 답이 보여야 한다. 하지만 마땅히 명확한 답이 보이지 않았다. 첫번째 이유는 이것들을 꿰뚫는 하나의 공통점을 도통 찾을 수 없다는 것이고, 두번째 이유는 '교수'라는 직업은 그리 환상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부터 말해보자면, 이공계 교수의 일상을 아주 가까이에서 보지 않은 사람은 이 표를 보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말한다. "교수네!" 하지만 지금까지 만나본 교수들 중 진짜로 존경스럽고 닮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교수님 및 선배님들 죄송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수라는 직업의 첫번째 열과 두번째 열을 본다. 하지만 실상은, 교수들은 세번째 열에 목을 매단다는 점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이공계이다. 그래서 교수를 마냥 욕할 수만은 없는 거다. 한때 이슈가 됐던 스위스 대학원생의 에 있듯이, 이제 더 이상 연구는 연구가 아니라 비즈니스다. (newspeppermint가 리뉴얼을 했나보다. 댓글이 다 없어졌군. 제목은 "학계를 떠나는 한 박사과정 학생의 뜨거운 질타") 그 글을 읽으며, 그 밑에 달린 100여개의 댓글을 읽으며, '연구'와 '공부'를 이음동의어라고 절대적으로 믿어왔던 내 철학이 무너졌다. 연구는 공부에서 시작할지는 몰라도 결국 비즈니스로 향한다...라고 생각하자, 모든 것이 설명되기 시작했다. 내 밑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릴적 꿈은 과학자였고 - 어른들이 물어보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하고 싶은 건 그것 뿐이었으니까. -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었다. 대학원 시절 훌륭한 학생은 프로젝트 기획서와 발표자료를 잘 만드는 사람이었고, 돈을 따느냐 못 따느냐에 사활을 걸었다. (물론 그 학생들이 연구를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기획력과 연구력은 어느 정도 비례하기는 했다.) 교수는 학자가 아니라 로비스트였다. (교수님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연구비를 위해서라면 적절히 구라를 칠 줄도 알아야 했다. 홍보가 가능한, 눈에 보이는 실적은 필요악이니까. 황우석이 창피하다고? 그 정도 조작은 널리고 널렸다. 이 정도만 해도 연구는 비즈니스라는걸 알아채야 했다. 단지 내가 너무 이상주의자였을 뿐이다. 난 비즈니스가 아닌 연구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게 진짜 아름다운 연구이고, 그것이야 말로 내가 꿈꾸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은 달랐다. (참고: 힉스가 오늘날을 살았다면?) 그렇게 과학자의 꿈은 말 그대로 "꿈", 일장춘몽으로 끝나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내 인생의 잘못된 선택이란, 게으름, 수동적 인간형, 생각없는 진로 선택(박사라니... 무려 박사라니!!),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아까워 더 옳은 길을 선택하지 못한 과감함 부족,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너무 늦게 깨달음, 그걸 알면서도 믿지 않으려 했던 나의 고집이 만든 콜라보레이션인 거다.


  생각이 이렇게 꼬여버리자, 위의 표 작성 다음 단계로의 진척이 이루어지질 않았다. 위에 썼듯이, 이 단어와 문구들을 한 방에 설명하는 그 무언가를 찾질 못했다. "가디언즈"에서 산타가 말했던, 나의 center에 있는 그것, 그것이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발견한 것이 엔하위키 미러에 있는 도올 김용옥 선생 페이지였다. 특히 너무나 공감했던 부분... 4. 성격 및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 파트에 있다.




『 그리고 2007년 이후로는 인터넷 강의까지 영역을 넓혔다. 본인은 TV강의보다 인터넷 강의가 훨씬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사이트는 여기. 이 사이트에 자신이 지금까지 배웠던 모든 학문을 축적해놓고 죽을 생각이라고 한다. 도올을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은 이러한 그의 대중적 활동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만, 도올 본인은 대중과의 소통이 없는 학문은 문명의 액세서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액세서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것. 예를 들어 헤겔 연구가들은 헤겔철학을 완전히 분석해서 대중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일상언어로 번역해야 하는데 과거에는 이러한 시도를 아무도 안 한다는 것이다. 자신들만이 헤겔을 이해했다는 프라이드 때문에 대중들에게로 내려가려 하지 않고, 헤겔의 봉우리 위에서 대중들더러 올라오라고 하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 도올 본인은 쉽게 이해되지 않은 언어는 그냥 개소리일 뿐이라고 말한다. 막말로 헤겔철학도 그냥 개소리라고 일갈한다. 물론 헤겔 철학의 성과는 충분히 존중하지만, 헤겔이 말을 너무 꼬아놨다는 것. 원래 독일학자들은 자기 고유의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말을 복잡하게 하는 경향이 강한데, 헤겔의 경우는 그게 특히 심해서 헤겔사전(?!)이 없으면 독해가 안 될 지경이라고 한다. 』




머리가 뻥 뚫린 느낌이었다. "바로 이거다!" 정말 상상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양의 공부를 한 사람, 그 사람이 '지금까지 배웠던 걸 모두 축적해놓고 죽을 생각'을 한다는 이 말이 내 가슴을 뚫어놓았다. 특히 '쉽게 이해되지 않는 언어'라는 개념은 이공계에도 똑같이 존재한다. 같은 원서를 여러 사람이 번역을 한다. 하지만 그 번역의 수준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엄청난 양이 팔렸고, 지금도 팔리고 있고, 10년 단위로 기념판까지 나오고 있는 홍 교수 번역의 '이기적 유전자'가 있는데도, 이 교수 번역의 '이기적 유전자' 중고책이 고가에 팔리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수학적 개념이 있다고 치자. 이걸 이해하기 위해 글자를 읽고 수식을 풀고 그림을 본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파고 또 파다보면 어느 순간 머리 속 전구에 빛이 들어온다. 그 빛이 비추는 것은 글자나 수식이나 그림이 아니다. 수학적 "개념"이다. 그리곤 다시 책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하게 된다. "이걸 왜 이렇게 어렵게 설명해놨어?"


  생각에 여기까지 닿자, 중요한 두 단어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공부', 그리고 '교육'. 교육이라 해서 거창할 필요는 없다. 진짜 침을 튀겨가며 누군가를 가르쳐도 되고,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운영해도 된다. 칸 아카데미, hyperphysics는 이미 훌륭한 교육자료이다. 


  일단은 여기까지는 어찌어찌 왔다. 막혔다 뚫렸다를 반복하며. 이 다음은? 아직 모르겠다. 다음 단계의 제목을 짓자면, "내가 하고 싶은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교집합 찾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자본주의는 좆같지만 내가 이 체제를 엎을 방법은 없으니 최소한 굶지 않을 정도의 돈은 벌어야 한다. (산에 들어가서 살지 않는 한은 말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야 겠다는 점이다. 강신주의 다상담 '일' 편을 듣고 나서 확실해진 것이 하나 있다면, 여태껏 한번도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것. 평생 남의 말만 듣고 남의 눈치만 보고 살아왔으니... 이젠 내 꼴리는 대로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것처럼, 죽기 전에 해보지 않아서 후회할 일이라면 언제든 시작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맞겠지. 사소한 돈이나 인간관계야 시간이 지나면 별 것 아니게 되겠지만, 이루지 못한 꿈은 평생 후회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회사에선 날 수단 방법 가리면서(!) 붙잡겠지만... 어차피 필요 없어지면 버리는게 회사이고, 그렇게 큰 회사인데 나 하나 없다고 별 일 있겠나. "사람을 새로 뽑을 지언정 원 부서로 돌아가는건 안 된다."라는 말까지 들은 이상, 단 1g의 미련도 없다. 아, 사족인데, 내가 회사생활 딱 1년 되었을 때 느낀 것이 있다. "회사를 위해 일하지 말고 나를 위해 일하자." 그게 회사에게도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길이었다.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는 우스개소리는 우스개가 아니었다. 여하튼, 돈이 인생의 목적이 아닌 이상 노예로 살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현재까지 생각해본 앞으로의 진로 목록은 아래와 같다. (중복허용)

  - 과외 또는 학원 강사 (수학, 물리)

  - 칸 아카데미 같은 site를 만드는 것

  - 책 쓰기, 수학 과학 관련 컨텐츠 다루기

  - 번역 (자막도 만들어보려 했으나 최근의 사태 때문에...)

  - 수학, 물리 공부 (항상 내 피를 끓게 하는 과목)

  - matlab이나 labview로 가능한 알바류

  - 각종 coding 공부 (C++, python, Cuda)

  - 아예 수학과 입학해서 다시 시작하기 (수학과 테크트리는 다 짜놨다.)

  - 특목고 수학 선생

  - 수학자, 과학자 되기 (어릴적 꿈이니까)

  - 어쨌든 순수과학을 하기

  - 감옥에 갇혀보기 (다른 고민 없이 공부만 가능하다면)

  - 재택근무, 프리랜서

  - 대학 등에서 강사 (강의만 하는)

  - 국내외 연구소/학교 포닥 (PCD, X-ray physics, X-ray imaging 등)


뭘 선택하든 쉬운 결정은 아니다. High risk가 반드시 high return으로 돌아오는건 아니니까. 시작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 느꼈더라도, 지금까지 해온 것을 완전히 버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Risk가 너무 크다면? 또 다른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방에 처음으로 돌아가느냐, 현실과 타협하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포닥은 그 타협점에 있는 방안이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든 이 시대의 흔하디 흔한 형태의 교수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여전히 공부는 재미있지만 연구자의 필수 덕목이라는 논문쓰기는 재미없고, 아이디어를 내는 것은 재밌지만 그걸 돈으로 바꾸는 것은 흥미없고, 가르치는 것은 재미있지만 실적에 쫓기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리더이어야 하고, 성공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자로 만드는 이 좆같은 세상에 반항하고 싶기 때문이다. 2인자면 어떠냐, 내가 재밌으면 됐지!


  그나저나 '동기 부여의 중요성'에 대한 것도 언젠가 써야 하는데... (참고: 동기부여의 비밀) 아참,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위험하답니다. 영민이형, 듣고 있소?





첨언1.


  참고: 과학자가 되고 싶나요? 때려치우세요!

  참고: 내가 대학원에 들어왔을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연구 노하우



  어째... 쓰다보니 졸라 길게 쓰긴 했는데, 그래도 말하고자 했던 내용을 다 담아내지는 못했다. 완벽이란 더 이상 더할 것이 없는게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것이라고 하던데. 글 하나에 모든 생각을 다 담으려 하다보니 약간 누더기가 된 면도 없잖아 있다. 썼다 지웠다 고쳤다 바꿨다... 퇴고는 한 100번은 한 것 같다. 아래는 도저히 어디에 어떻게 끼워넣어야 할지 몰라서 넣지 못한 내용들.


- 과학(특히 순수과학)과 공학의 차이점은 소통의 유무일까?

- 실적 스트레스가 싫다는건, 나약한 인간의 변명일 뿐일까?

- 결국 무슨 일을 하더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실적'이 있어야 하는 걸까?

- 누군가 내게 돈을 준다면, 그 사람이 시키는걸 하는게 맞다. (동균)

- "성공한 사람보다는 가치 있는 사람이 돼라." - 아인슈타인

- 가르침에는 두 종류가 있다. 예를 들면, 논문 지도와 수학 공식의 차이. 허구연이 감독으로서 실패했던 이유.

- Coding이 재밌는 이유?: 아이디어 도출->구현에서 오는 즐거움

- 언젠가 수학 공부는 직업으로든 아니든 하기는 해야겠다. 안 하면 정말 죽기 전에 후회할 것 같다.

- 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가 벽을 넘어섰을 때의 희열

- 회사에서 했던 일 중 즐거웠던 일: PCD E-cal

  : 문제의 definition과 핵심이 명확

  : 문제 자체가 잘 모듈화 되어있음

  : 직접 구현 및 실험적 확인에서 오는 재미

  : 의미있는 결과

- 회사에서 했던 일 중 괴로웠던 일: Grid 실험, FPD 실험

  : 단순 노동, 단순 반복 작업

  : 모듈화 되어 있지 않음 (관련 요소가 너무 많음)

  : 시다바리,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 동기 부여 안됨

  : 함께 토론할 사람 없음



첨언2.


  본문에는 쓰지 않았지만 수학과로 전과를 할 기회가 있었다. 박사과정을 막 시작했을 무렵이었을테다. 그땐 미친 짓이라 생각했다. "겨우 박사과정 시작했는데, 이제와서 다시 시작한다고? 에이, 그건 아니지..."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건 아닌게 아니었다. 이렇게 후회할 거였다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저질러야 하는게 맞지 않았을까. 결국 그 동안의 노력이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거다. 박사학위를 포기하려고 심각하게 고민할 때도 상황이 비슷했지. 아니. 오히려 더 심각했다. 뭐, 생각해보면 버리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일을 망친 적이 여러 번 있기는 했지. 진로든 연애든. 내 인생이란 참... 그렇다.

  한 마디만 더 하자면, 박사과정을 들어간 것 자체가 생각 없음과 우매함에서 왔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보면 박사학위가 딱히 필요한 것들이 아니다. 물론 여러 면으로 도움은 되겠지만. (오오, 박사라니, 오오!)

  아니, 어떻게 보면 기계과를 선택한 것 자체가 넌센스다. 기계과를 선택한 이유가 몇가지 있다. 요거 facebook에도 쓴건데... 1) 좀 더 다양한 학문을 맛보고 싶었고, 2) 고등학교 시절 수학실력이 늘지 않음에 대한 좌절과 두려움이 있었고, 3) 기계과 건물이 기숙사에서 가까웠고, 4) 취업이 어렵하는 흉흉한 소문(수학과 나오면 나중에 뭐하냐?)이 있었다. 이 중에서 그나마 근거 있는 이유는 1번 뿐이고, 나머지는 개소리였다. 에이 썅. 짜증나.

  그나저나 왜 자꾸 수학 얘기를 꺼내냐고? 내 생에 통틀어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들은 수학과 함께 했었기 때문이겠지. 국민학교 때부터 시작한 수학경시. 그런데 어쩐지 머리가 커질수록 상은 작아졌다. 국민학교-금상, 중학교- 동상, 고등학교-장려상... 여기까지가 끝인가? 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수학과를 선택하지 않은 면도 크다. 근데 웃긴건, 나이를 먹을 수록 아쉬움이 점점 커진다는 것. 난 수학적 두뇌가 퇴화한 게 아니라, 공부 말고도 생각할게 많아지면서 집중력이 떨어진 것이었다. 난 그렇게 믿는다. 학부 때 들은 과목들을 성적순으로 나열해보면, 상위에 있는 것들은 수학 과목들과 기계과 기초 역학 과목들이었으니까. 아무리 봐도 난 science에 맞는 인간인데... 왜 그랬을까? 쩝.



첨언3.


  글 쓰는게 참 쉽지 않다. 써놓고 다시 읽어보니 어색한 문장이 꽤 보인다. 왜일까 고민해봤는데, 글을 너무 '말하듯이' 썼기 때문인가 싶다. 지금 내 생각을 누구한테 말로 전한다면 이렇게 하겠지? 라는 느낌을 그대로 글로 옮기니 잘 읽히지 않는듯. 말하고 듣는 언어와 읽고 쓰는 언어가 이렇게 다르구나...라는 걸 이제야 느낀다. 아, 한가지 더. 쉼표를 좀 줄여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뭐 결국 문장을 짧게 쓰면 해결될 일이긴 하다. 수식어-피수식어의 순서를 너무 칼같이 지키려다보니 문장이 길어진 감도 없잖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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