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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글을 싼다

인터스텔라의 과학

인터스텔라의 과학 (킵 손 씀, 전대호 옮김)


  인터스텔라의 여파는 아직도 끝나지 않아,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사게 만들었고 관련 영상을 보고 또 보고 또 보게 만들고 있다. 나에게는 컨택트 이후로 최고의 영화라 할 만하다. 이 책은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사야 하는 책이라 말하고 싶다. 이 영화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쳤고 어떤 어려움들이 있었는지, 영화의 주요 장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그런 장면들이 연출된 것인지, 어떻게 시뮬레이션 했는지, 감독과는 어떤 얘기들이 오갔는지! 차고 넘치는 디테일의 향연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배경이라 할 만한 과학 이론들에 대해서도 최대한 쉽고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아주 쉽지만은 않다. 이에 대비해 더 읽어보면 도움이 될만한 자료들을 책 뒤에 붙여두는 센스가 마음에 들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에, 약간만 더 자세히 적어보자면...

- 최초 기획 단계엔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2005년)
- 감독(크리스토퍼 놀란), 시나리오 작가(조너선 놀란), 그 외 배우들과 제작진과의 이야기
- 우리 브레인(우리 우주가 속해있는 차원)과 그보다 한 차원 높은 벌크 (초공간)
- 블랙홀이란, 사건의 지평선이란, 특이점이란
- 영화의 가르강튀아는 어떤 물리적 모델을 설정하였는지
- 왜 가르강튀아는 그렇게 보이는지 (휜 시공간에 대한 이론과 시뮬레이션)
- 브랜드 교수는 50년 전 무엇을 관찰함으로써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 쿠퍼가 들어간 테서렉트는 왜 그렇게 생겼는지


  포인트만 딱딱 집어내자면 (그리고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의 관심을 끌어내자면) 이 정도가 될 것 같다. 재밌는 부분은, 영화의 진행방향과 설정에 대한 감독과의 논쟁(?)에 대해 꾸준히 언급된다는 것. 책을 읽는 내내 "이 양반, 감독한테 맞추느라 애 좀 썼구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 "난 가르강튀아 주위에서 시간 지체가 이만큼이 되도록 진행하겠다"라고 얘기하면, 저자는 집으로 돌아가 "그러려면 가르강튀아가 질량이 얼마이고 얼마나 빨리 회전해야 하는거지?"라면서 적절한 설정값들을 찾는 식이다. '물리법칙에 위배되는 설정은 없어야 한다'라는 대전제를 두고 시작한 영화였지만, 작은 부분들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살짝살짝 넘어간 부분도 꽤 있다. 모든 부분들을 물리법칙에 완벽하게 맞추자니, 웜홀 통과는 순식간에 끝나야 했고 가르강튀아의 거대한 강착원반은 영화 초반부터 화면을 꽉 채워야 했으며, 결과적으로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너무 일찍 힘빠지게 하는 영화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결국 약간의 물리적 엄밀성을 버리고 영화적 극적성을 취한 것인데, 저자도 본인이 감독이었으면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 고백한다. 


  이 책은 친절하지만 친절하지 않기도 하다. 앞서 썼듯이, 저자는 최대한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하지만 설명의 난이도 측면에서만 봤을 땐 그렇게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흥분시키고 기어이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고 본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느꼈던 흥분이 잘 표현되지 않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꼭 그 흥분을 여러분과 같이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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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1.
  어려운 천체물리학 이론을 쉽게 설명하는 것에 실패했다고는 썼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저자의 잘못은 아니다. 원래 어려운 거니까. 3차원(시간축 제외)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4차원 공간을 머리속으로 상상하라고 것부터가... 특히 초공간이나 휜 공간 - 물질이 휘는 것이 아니라 공간 자체가 휘어 있는 것이다! - 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약간 정신이 혼미해기도 함. 내가 읽는 것이 한글이 맞는가...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인가... 결국 대부분의 그림은 3차원을 2차원으로, 4차원을 3차원으로 단순화하여 설명하는데, 뭐랄까... '이걸 이렇게 이해해도 되는 건가?'라는 의문을 가지고 읽는 느낌?


사족2.
  2차원, 3차원, 다차원에 대한 설명이 책의 반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아니나 다를까 "플랫랜드"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아직 사놓고 읽지 못한 책... 이 기회에 읽어볼 참임.